첫 입사, 사원증의 경쾌한 소리를 떠올리며
처음으로 회사라는 곳에 들어갔던 그 날, 전문가처럼 보이는 프로필 사진이 인쇄된 플라스틱 카드를 받았습니다. 카드로 출입문을 통과할 때 찍히던 ‘삑’ 하던 소리. 내가 남들이 다 가고 싶어하는 이 회사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여진 기쁨의 소리로 기억에 남았네요. 곧 담당자가 와서 사번과 인트라넷 계정이 발급되고, 사내 보안 네트워크로 연결 되었습니다. 팀원들과 이야기 하는 곳, 회사 전체 구성원과 업무 소통을 할 수 있는 워킹 스페이스를 활용하는 법을 알려줬고, 회사의 시스템 안에 완전하게 받아 들여졌죠.
회사의 시스템 안에서는 내가 볼 수 있는 문서와 볼 수 없는 문서가 정해져 있었습니다. 입사하는 날부터 퇴사하는 날까지 만들었던 보고 문서, 기획서 등은 내 이름으로 아직도 그 곳에 남아 있습니다.
AI 에이전트, 사원증을 받을 수 있을까?
사원증은 그냥 플라스틱 카드가 아니었습니다. 그걸 받는 순간부터 회사 시스템 안에 '나'라는 존재가 등록되고, 내가 갈 수 있는 곳과 없는 곳이 정해지고, 내가 한 일이 내 이름으로 남기 시작했으니까요. 물리적인 사원증이라기 보다는, 시스템에 소속되어 있는 인정받은 일원이라 의미를 공식화하는 것입니다. 최근에는, AI 에이전트를 시스템 속의 일원으로 인정하려는 시도들이 생기고 있습니다.
지난 7월 21일, 트위터를 공동 창업한 잭 도시가 이끄는 회사 Block이 Buzz라는 업무용 메신저를 발표했습니다. 사람과 AI 에이전트가 같은 채널에서 함께 일하는 협업 도구인데, 잭 도시는 이걸 Slack과 GitHub에 대한 의존을 줄이기 위해 만들었다고 밝혔어요. X(트위터)로 발표를 한 후, 기사화 되면서 화제가 되었는데요. 이를 'Slack의 대항마'로 읽는 기사도 있었고, AI 에이전트를 진짜 직원으로 만드는 시도라는 해석도 있었습니다. 다만 그 화제에는 양면이 있었는데, 도시가 불과 다섯 달 전에 "AI 때문"이라며 회사 인력을 절반 가까이 줄였다는 사실이 이 발표를 바라보는 시선에 겹쳐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AI와 함께 일하고 있는데, 뭐가 다른가요?
한 문장으로 답하면, 지금 우리가 AI와 일하는 방식은 '사원증 빌려주기'이고, 새로 나오는 시도들은 '사원증 발급하기'입니다.
생각해보면 지금 AI는 전부 제 이름으로 일합니다. AI와 함께 쓴 글도, AI가 짜준 코드도, 결과물에 남는 서명은 제 것 하나입니다. AI는 제 계정으로 로그인한 화면 안에서만 존재하고, 창을 닫으면 회사 시스템 어디에도 'AI가 여기서 일했다'는 흔적이 없습니다. 말하자면 제 사원증을 목에 걸어주고 회사를 드나들게 한 셈이에요. 잘한 일도 제 것, 사고를 치면 제 책임이고요.
빌려주는 방식은 편합니다. 근데 빌려 쓰는 사람이 점점 많은 일을 하기 시작하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이 문서를 고친 게 나인지 AI인지, 이 메일을 보낸 게 누구인지 구분이 안 되기 시작하거든요. 그냥 AI 명의로 사원증을 만들어주고 명확하게 하면 되지 않을까요?
Buzz, AI 에이전트와 함께 일하는 워크스페이스
앞서 소개한 Buzz를 조금 더 들여다보면, 겉모습은 Slack과 비슷합니다. 채널이 있고, 스레드가 있고, 사람들이 대화합니다. 다른 건 하나, AI 에이전트가 채널에 정식 멤버로 들어와 있다는 점입니다.
여기서 '정식 멤버'라는 게 핵심인데요. Buzz의 에이전트는 사람 계정에 얹혀 있지 않고, 자기 계정과 암호화 키와 권한을 따로 받습니다. 그 신원으로 메시지를 올리고, 코드를 리뷰하고, 맡은 작업을 실행합니다. 그리고 그 모든 행동이 '누가 했는지'와 함께 기록으로 남고요. 물리적인 사원증을 발급 받는 건 아니겠지만, 사원증을 발급 받았다고 할 수 있죠.
Block 스스로 아직 초기 단계라고 밝히고 있어서, 아직 고객이 있어 보이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방향은 분명합니다. 도시는 Buzz를 "model-agnostic, decentralized, self-sovereign, open source"라고 소개했는데, 풀어 말하면 어떤 AI 모델이든 붙일 수 있고, 특정 회사 서버에 갇히지 않는 열린 구조라는 뜻입니다.
시대의 연결을 미리 보았던 사람의, Next Step.
하나 눈여겨볼 만한 건, 이걸 만든 사람이 늘 '그 시대의 연결'을 만들어온 사람이라는 점입니다. 트위터를 공동 창업했던 2006년은 개인이 미디어가 되기 시작한 때였고, 스퀘어를 만든 2009년은 스마트폰이 결제 수단이 되던 때였죠. 그가 연결한 대상들 —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 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 — 은 그 시대에 새로 등장한 관계였습니다. 그리고 2026년, 그가 연결하겠다고 나선 상대는 처음으로 사람이 아닌. 바로 AI 에이전트.
미국 결제 전문지 PYMNTS는 Buzz가 "회사가 디지털 워커를 고용하면, 그들은 어디에 앉는가"라며, 이런 시도가 기존의 업무 소프트웨어가 아직 따라잡지 못한 질문에 대한 답이 된다고 평가 했습니다. Block의 AI 총괄 브래들리 액슨도 모든 회사가 결국 사람과 에이전트가 함께 일하는 공간을 필요로 하게 될 거라고 말했고요. 도시 속 연결 대상이 늘어날 때마다 그 보다 앞서 한 발씩 전진했던 그였는데요. 이번 스텝으로 다음에 무엇을 연결할 지는 명확해진 것 같네요.
AI 에이전트와 일하기, 정해진 미래?
잭 도시만 미래를 이렇게 예측하는 건 아닙니다. 분위기로 보아서는 AI 에이전트와 사람이 함께 복잡하게 일한다는 건, 정해진 미래로 다들 생각하고 있는 것 같은데, 다만 이를 준비하는 우리의 자세들이 아직 한 방향으로 정해진 건 아닙니다. 투자사 Paradigm은 지난 5월 결제 네트워크 Tempo와 함께 Centaur라는 도구를 오픈소스로 공개했습니다. 새 메신저를 만드는 대신 기존 Slack 안에 '가상 직원(virtual employee)' 하나를 들이는 방식이에요. 동료를 태그하듯 Centaur를 태그하면 몇 초에서 몇 시간까지 걸리는 일을 수행하고, 회사의 실제 자격증명으로 일하되 비밀번호 원본은 보지 못하게 설계돼 있습니다. 사원증을 빌려주긴 하는데, 비밀번호는 가려둔 중간 방식이라고 할까요.
마이크로소프트는 아예 기업용 계정 관리 시스템 쪽에서 접근합니다. Entra Agent ID라는 이름으로, 회사가 직원 계정을 관리하던 바로 그 관리 도구 안에서 AI 에이전트의 신원을 만들고, 권한을 주고, 회수하는 기능을 넣고 있어요. 한 가지 재미있는 건, 사내 도구로 에이전트를 만들면 만든 사람이 그 에이전트의 '스폰서'로 기록됩니다. 신입사원 서류의 보증인 칸처럼요. 반면, Buzz의 에이전트는 자기 명의의 키를 직접 갖고 있어서 그 누구의 신원 보증도 필요로 하지 않고, 회사를 옮겨도 이력이 따라가는 더 독립적인 신분 증명, 가령 여권에 가깝다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사원증을 '발급'한다는 건, 정확히 뭘 주는 건가요?

이를 통해, AI에게 일을 '맡기고', 그 일의 경계를 긋고, 나중에 되짚어볼 수 있게 되는 거죠. 권한을 주고 책임을 지울 수 있는 구조입니다.
인프라는 준비를 시작하고 있는데, 우리는 준비됐나요?
정말 AI 에이전트와 우리가 함께 일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를 인프라 측면이 아니라 사회와 조직문화 쪽으로 본다면 아직은 갈 길이 먼 것 같긴 합니다. 2024년 여름, HR 소프트웨어 회사 Lattice가 AI 에이전트에게 공식 '직원 기록'을 부여하겠다고 발표한 적이 있습니다. 온보딩을 시키고, 목표를 주고, 담당 매니저까지 붙이겠다고 했는데, 이 프로젝트는 발표 사흘 만에 철회됐습니다. 사람 직원을 향한 존중의 문제라는 반발이 쏟아졌거든요. 일자리를 AI에 뺏길까 불안한 시기에, 조직도에 AI를 나란히 올린다는 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겁니다.
Buzz를 만든 잭 도시도 올해 2월, Block 인력을 1만 명에서 6천 명 이하로 줄이겠다고 발표했습니다. 감원의 이유로 그는 AI를 지목했고, AI가 핑계이든 아니든 사람 절반을 내보낸 회사가 다섯 달 뒤 AI 에이전트가 정식 멤버로 앉아 있는 워크 스페이스를 내 놓은 것은 그렇게 아름다워 보이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면 이 마음의 불편함과 별개로, 우리는 AI 에이전트 없이 일할 수 있을까?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이 역시 비가역적인 상황이 된 것 같습니다.
일은 이미 시키고 있는데, 사원증은 만들어주지 않은 상태. Agent가 무슨 일을 하는지는 대략적으로 설명할 수 있지만, 각 Agent의 권한과 책임에 대해서 설명해 보라고 하면, 다들 똑부러지게 설명 할 수 있을까요?
Q. AI에게 사원증을 발급하면, 사고가 났을 때 책임도 AI가 지나요?
아니요. 법적·최종적 책임은 여전히 사람과 조직에 있습니다. 사원증 발급이 주는 건 책임의 '이전'이 아니라 '추적 가능성'입니다. 누가 언제 무엇을 했는지 기록이 남아야, 책임을 물을 곳도 정확해지니까요.
Q. Buzz는 지금 써볼 수 있나요?
네, 무료 오픈소스이고 데스크톱 앱이 나와 있습니다. 다만 Block 스스로 초기 단계라고 밝히고 있어서, 실무 팀 전체를 옮기기보다는 구경하고 실험해보는 단계로 보는 게 맞습니다.
Q. 우리 조직은 당장 뭘 준비하면 되나요?
거창한 시스템 도입보다, "지금 우리가 쓰는 AI는 어디까지 접근할 수 있고, 그 기록은 어디에 남는가?" 이 질문에 답하는 과정으로 권한 설계를 시작해 보는 것도 답이 될 것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