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에 교육과 관련한 가장 유명한 논쟁은 Nature(타고나는가) & Nurture(길러지는가) 였고, 이는 아직도 답을 찾지 못했습니다. 조금 다른 결이지만, 최근에는 AI라는 도구, 디지털이라는 도구에 대해서는 'Native'에게 유리한가 'Immigrant'에게 유리한가?라는 것이 하나의 비슷한 질문 거리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
디지털 네이티브라는 말이 처음 나왔을 때, 그 반대편에 붙은 이름은 디지털 이미그런트 — 즉, 이민자였습니다. 나중에 건너와서 배운 사람들이죠. 그리고 지금 일터에서 AI를 열심히 쓰고 있는 우리들은 자기일에는 '경험'이 있지만 AI 도구에 관해서는 어찌됬건 이민자들 입니다. 어떤 면에서는 발명자들이기도 하지만요. 경험이 많은 사람들은 자기만의 방식이 있고, 그 방식으로 성과를 만들어 왔고, 때문에 좋든 싫든 몸에 베인 습관과 고집이 있기 마련입니다.
어쨌거나 AI는 도구이기 때문에, 이것을 활용하는 '목적'이 있어야 유리할 테지만요. 일터 안에서의 목소리도 두 갈래입니다 . "이제 AI가 있으니 성격 나쁘고 무례한 선배는 필요 없다"와 "이제 AI가 있으니 노력은 하지 않고 징징대는 신입은 필요 없다". 주니어는 시니어를 필요없다고 하고, 시니어는 주니어가 필요없다 하니.
필요없는 시니어가 되지 않기 위해서 고민하고 있을 여러분들. 저를 포함해 지금 이 글을 읽을 만한 AI 이민자들을 위한 개념을 하나 소개해 드리려고 해요.
배운 것을 되돌린다. Un-learning(언러닝)입니다.
일터에서 언러닝이 안 되면 어떤 모습일까요?
데이터를 통째로 넘기고 분석을 요청하면 되는 상황에서, 20분짜리 피벗 테이블과 VLOOKUP 수작업 루틴을 고수하는 엑셀 장인. 25년 몸에 밴 검색창 습관 그대로 AI에 키워드 두세 개를 던져놓고 뻔한 답이 돌아오면 "별거 없네"로 결론을 내리는 사람. 보고서는 며칠 갈아 넣은 티가 나야 한다는 노동 증명의 회계 때문에, AI 초안에서 출발하는 후배의 결과물을 "날로 먹는다"로 판정하는 시선.. "분석은 내 손을 거쳐야 검증된 것이다", "질문은 짧을수록 효율적이다", "산출물의 가치는 투입 시간에 비례한다" — 지금도 모두 부정하기는 어렵지만, 한때는 더 옳았고, 그래서 더 단단하게 이미 굳은 생각들입니다.
이 생각들을 벗어나지 못하면 벌어지는 일은 세 단계로 진행됩니다. 먼저 노력과 성과가 역전됩니다. 경험이 오히려 병목이 될 수도 있고요. 그러다가 "써봤는데 우리 일엔 안 맞아"라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게 의지나 나이의 문제가 아니라는 증거들이 있습니다.
언러닝에 대한 재미있는 사실 9가지
1. Unlearning의 un은 '아니다'가 아닙니다. 되돌린다는 의미입니다.
'안 배우는 것'이 아니라 '배운 것을 되돌리는 것.' 영어 접두사 un-은 의미가 두 개 있습니다. unhappy의 un-은 부정을 뜻하는 접두사이고, undo·unbutton의 un-은 역행·제거를 뜻하며 게르만조어 *andi-('맞서다')에서 온 다른 계통입니다. 그러니까 언러닝은 어원상 '학습의 부정'이 아니라 '학습의 undo' 되돌리기라는 뜻이 됩니다.
2. 자전거 타는 법을 '잊는' 데 8개월이 걸립니다
한 기사에 따르면 유튜브 채널 Smarter Every Day를 만드는 엔지니어 데스틴 샌들린도 여느 사람처럼 어린 시절 자전거를 배웠습니다. 그런데 용접공 친구가 그의 자전거에 손을 댔습니다. 핸들과 앞바퀴의 대응을 반대로 바꿔놓은 거죠. 핸들을 왼쪽으로 돌리면 바퀴는 오른쪽으로 향하는 자전거였습니다.몇 분이면 정복하리라 생각했지만, 예상된 작동 방식에 대한 뇌의 인지 편향을 이겨내는 데 매일 연습해 8개월이 걸렸다고 합니다. 여기서 그는 지식은 이해와 같지 않다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흥미로운 건 여섯 살 아들 쪽입니다. 인생의 절반을 자전거와 함께 보낸 이 아이는 거꾸로 자전거를 2주 만에 익혔습니다. 기사는 이유를 두 겹으로 설명하는데, 아이들의 뇌가 어른보다 훨씬 높은 신경가소성을 지녔다는 것, 그리고 어른은 연차만큼 습관과 편향이 그만큼 더 깊이 새겨져 있다는 것입니다. 아빠에게는 30년치가 새겨져 있었고 아들에게는 3년치가 있었던 셈이고요.
3. '디지털 네이티브' 개념의 창시자는 이 개념을 스스로 뒤엎습니다
앞서 가볍게 언급되었던 디지털 네이티브는 2001년 마크 프렌스키가 교육 저널 On the Horizon에 쓴 글에서 만든 용어이고, 디지털 이미그런트도 같은 글에서 함께 나왔습니다. 프렌스키는 이민자가 아무리 적응해도 어느 정도 '억양'이 남는다고 봤습니다 — 정보를 찾을 때 인터넷을 두 번째로 떠올린다거나, 프로그램을 켜기 전에 매뉴얼부터 읽는 습관 같은 것으로요(Prensky, 2001).
그런데 8년 뒤, 그 구분을 가장 먼저 거둔 사람이 프렌스키 본인이었습니다. 2009년 논문에서 그는 자신이 만든 용어들이 유용하게 쓰여 왔음을 인정하면서도, 21세기가 더 진행되어 모두가 디지털 기술의 시대에서 자라게 되면 네이티브와 이민자의 구분은 덜 유의미해질 것이라고 썼습니다. 그러면서 새로운 구분을 상상해야 한다며 '디지털 지혜(digital wisdom)'를 제안합니다.
그가 내놓은 새 기준의 성격을 보면 방향이 분명해집니다. 디지털 지혜란 타고난 능력을 보완하도록 디지털 도구를 사려 깊게 쓰는 것, 그리고 그 도구를 활용해 더 나은 판단에 이르는 것을 가리킵니다. 태어난 해, 도구를 접하는 시기를 그 기준으로 잡은게 아니라 아니라 판단력에 관한 기준으로 갈아탄 셈이죠.
4. "멍청해 보일까 봐" 새로운 걸 배우지 않습니다
조직이 왜 안 바뀌는지를 수십 년 연구한 조직심리학자 에드거 샤인은, 사람이 변화 앞에서 느끼는 두려움을 두 갈래로 나눴습니다. 하나는 생존 불안입니다. "이대로 가면 도태된다." 다른 하나는 학습 불안이고요. "새로 배우는 과정에서 내가 무능해 보일 것이다."
사회, 조직이 채찍으로 휘두르는 건, 언제나 생존 불안이죠. 위기감 조성, AI 도입 압박, 성과 지표. 그런데 샤인은 위협이나 죄책감을 키우는 것만으로는 오히려 방어가 커진다고 봤습니다. 배움의 고통을 피하려는 쪽으로 사람이 움직인다는 거죠. 그가 내린 처방은 반대쪽이었습니다. 생존 불안을 더 올리는 게 아니라 학습 불안을 낮추는 것, 구체적으로는 정체성이나 자존감을 잃지 않으면서 모르는 것을 물어볼 수 있다고 느끼게 하는 것 — 심리적 안전입니다.
그러니까 "AI 써봤는데 우리 일엔 안 맞더라"는 말이 게으름의 신호가 아니라 학습 불안의 신호일 수 있습니다. 실제로 안 맞아서가 아니라, 못 하는 모습을 오래 보이기 싫어서 일찍 접은 것일 수 있고요.
그리고 이 불안은 연차에 비례해서 커집니다. 신입이 "이거 어떻게 쓰는 거예요"라고 묻는 건 무료지만, 15년차가 같은 질문을 하는 것은 그보다는 치뤄야 할 대가가 있습니다. 팀에서 제일 잘 아는 사람으로 여겨졌을 수록 모른다고 말하기가 어려워지고, 그래서 가장 배워야 할 사람이 가장 안 물어보는 구조가 만들어집니다.
5. 언러닝은 삭제가 아닙니다
언러닝의 기억의 삭제가 아니라 우선순위 조정에 가깝습니다. 10년 넘게 안 쓴 전화번호가 문득 떠오르기도 하듯이요. 기억에는 두 개의 강도가 있다고. 합니다. 하나는 얼마나 단단히 저장됐는가이고 다른 하나는 지금 얼마나 쉽게 꺼내지는가입니다. 얼마나 단단하게 저장되었는가? 라는 것은 줄어드는 개념이 아니라고 합니다. 시간이 지나며 오르내리는 건 '얼마나 쉽게 꺼내지는가?'라는 거죠.
그래서 언러닝은 하드디스크를 포맷하는 일이 아닙니다. 파일은 그대로 있고, 바탕화면에서 어떤 아이콘을 앞에 둘지 바꾸는 일에 가깝습니다. 20년간 맨 앞자리를 차지해온 방식이 여전히 거기 있되, 손이 먼저 가는 자리를 다른 것에 내주는 것.
6. 한 번 통했던 방법에 바로 손이 갑니다
한 번 했던 방법이 있다면, 다음에도 거기에 먼저 눈이 갑니다. 더 이상 최선이 아닐 때도요.
80년 전 한 실험이 이걸 보여줬습니다. 눈금 없는 여러 개의 물병으로 일정 양을 재는 문제를 여러 개 풀게 한 뒤에 다른 방식으로 하지만 더 간단하게 풀 수 있는 문제를 내어주었는데 연습을 한 그룹보다 아무것도 안 해본 그룹이 더 잘 풀었습니다. 심리학은 이걸 아인슈텔룽 효과라고 부릅니다.
좀 더 전문성이 필요한 문제도 동일합니다. 한 체스 연구진이 같은 선수에게 두 개의 문제를 주었습니다. 하나는 고수라면 다 아는 정석 패턴이 눈에 띄는 문제였고, 다른 하나는 그 패턴이 없는 문제였습니다. 두 문제의 정답은 같았고요. 선수들은 정석 패턴이 보이는 문제에서 오히려 답을 찾아내지 못했는데요. 연구진이 선수들이 판의 어느 칸을 보는지 기록했더니, 정석 패턴이 보였던 문제에서 이들의 시선이 그 정석 패턴과 관련된 자리를 맴돌았습니다. 익숙한 답에만 시선이 머물고 다른 데를 찾아볼 이유 자체가 사라졌던 거죠.
한편, 실력이 높은 선수일수록 이 함정에 덜 걸렸고, 최적해를 찾아낸 이들은 익숙한 수에서 서서히 눈을 떼기 시작했습니다. 경험이 함정을 만들지만, 그 함정에서 빠져나오는 힘도 경험에서 나왔던 겁니다.
7. 초보에게 좋은 교육이 전문가에게는 해가 됩니다
친절한 교육은 누구에게나 좋을 것 같지만, 꼭 그렇지 않습니다. 배우는 사람이 얼마나 아느냐에 따라 같은 교육이 정반대로 작동합니다.
전기 배선도 가르치는 실험이 있습니다. 한쪽 그룹에는 도면 옆에 설명을 빠짐없이 붙여줬고, 다른 쪽에는 도면만 줬습니다. 처음 배우는 사람들은 설명이 붙은 쪽에서 훨씬 잘 배웠습니다. 그런데 이미 도면을 볼 줄 아는 사람들은 반대였습니다. 설명을 같이 제공받은 쪽에서 성적이 더 낮게 나왔거든요. 이미 머릿속에 있는 것을 눈앞의 설명과 하나하나 맞춰보느라 정작 새것에 쓸 힘이 줄어든 겁니다. 교육공학은 이걸 전문성 역전 효과라고 부릅니다 친절한 설명이 누군가에게는 치워야 할 짐이 되는 셈이죠.
8. AI도 지우는 기술은 따로 발명했습니다
컴퓨터에서 파일을 지우는 건 쉬운 일입니다. 그런데 AI가 배운 것 중 하나만 골라 지우는 건 다릅니다. 얼마나 어렵냐면, 그걸 하려고 머신 언러닝이라는 연구 분야가 따로 생겼을 정도입니다.
'잊혀질 권리'를 보장하는 법이 생기면서 시작된 분야입니다. 내 정보를 학습한 AI가 있다면 그걸 지워달라고 요구할 수 있어야 하니까요. 그런데 막상 해보니 사람에게는 아무렇지도 않은 일 — 어떤 건 기억하고 어떤 건 흘려보내는 일 — 이 기계에서는 재현되지 않았습니다.
문제는 배운 것들이 서로 얽혀 있다는 데 있습니다. 한 가닥만 뽑으려 해도 딸려 나오고, 억지로 걷어내면 멀쩡하던 다른 능력이 같이 망가집니다. 사람의 기억이 지워지지 않는 것과 같은 이유죠. 게다가 지웠다는 걸 증명하는 것도 별개의 숙제로 남아 있고요.
9. AI를 신뢰할수록 비판적 사고는 줄어듭니다
사람들은 AI가 내놓은 결과를 확인하고 쓸까, 그냥 쓸까요?
직장인 300여 명이 실제 업무에서 AI를 쓴 사례를 모아 분석한 연구가 있습니다. 갈랐던 건 무엇을 믿느냐였습니다. AI를 믿는 사람일수록 결과를 확인하지 않고 그대로 썼습니다. 반대로 자기 실력을 믿는 사람일수록 결과를 더 따져보고 썼고요.
앞의 사람은 편해지고, 속도도 빠르지만 만약에 틀린 결과가 있다면 그것도 그대로 나갑니다. 뒤의 사람은 번거롭지만, AI가 못 잡은 걸 잡아냅니다. 성향일수도 있고. 선택일 수도 있겠죠. 그런데 뒤쪽 일을 하려면 조건이 하나 필요합니다. 결과가 맞는지 알아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건 그 일을 오래 해본 사람이 갖고 있는 것입니다. 일을 오래해 본 사람은 적어도 하나의 선택지가 더 생기는거죠. 자료를 직접 모으고 직접 만들던 방식을 내려놓을 수 있다면, 쌓아온 안목은 그대로 이 시대의 무기가 됩니다.
언러닝이 안 되면 AI 전환은 어려운 걸까요?
어렵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이유가 통념과 다릅니다. 나이 들어서 못 배우는 게 아니라, 이미 잘 배워둔 구 시대의 방식이 자동으로 튀어나오는 걸 못 막아서입니다.
5만 명 가까운 사람을 검사한 한 연구에서 인지 능력의 정점은 능력마다 제각각인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어떤 능력은 고등학교 졸업 무렵 꺾이지만, 타인의 감정을 읽는 능력은 40대에서 50세 사이가 정점이었고, 어휘력은 60대 후반까지 계속 올라갔습니다. 단일한 '인지적 전성기'라는 것 자체는 근거 약한 모델이었던 셈입니다.
그러니 진짜 걸림돌은 학습 능력의 노화가 아니라, 익숙한 답이 손과 눈을 먼저 끌고 가는 순간들입니다. 체스 선수들의 눈이 정석 패턴에 묶였던 것처럼요.
AI 이민자가 이미 가지고 있는 것, 그리고 버리지 말아야 할 것
이민자에게는 새로 배울 필요가 없는 자산이 두 개 있습니다.
하나는 일을 맡기는 기술입니다. 배경을 설명하고, 목적을 공유하고, 중간 결과를 검수하고, 어디까지 위임할지 정하는 것. 사실은 시니어라면, 이미 회사에서 해 왔던건데요. 신입에게 일을 줄 때는 이걸 다 하면서 AI에게는 명령어만 던지는 경우가 흔한데, 그 격차만 좁혀도 결과가 달라집니다. 위임과 검수는 연차가 쌓아준 기술이고, 사람보다도 AI는 더 많은 맥락을 필요로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른 하나는 결과물이 맞는지 알아보는 눈입니다. AI가 일을 대신할수록 확인하는 일의 가치가 올라가는데, 그 눈은 그 일을 오래 해본 사람에게 있습니다.
버리지 말아야 할 건 배우는 자세입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사티아 나델라가 취임 후 가장 먼저 손댄 것이 조직 문화였는데, 방향이 정확히 이거였습니다. 자기가 옳다는 걸 증명하는 데 몰두하는 'know-it-all'에서, 계속 배우는 'learn-it-all'로. 타고난 능력이 앞서는 사람보다 계속 배우는 사람이 결국 더 나아진다는 게 그의 말이었고요. 세계경제포럼이 앞으로 수요가 커질 스킬 목록에 '호기심과 평생학습'을 올려둔 것도 같은 방향을 가리킵니다.
Q. 언러닝과 머신 언러닝은 다른 건가요?
다릅니다. 언러닝은 사람이 기존 지식·습관의 자동 적용을 멈추고 되감는 능력이고, 머신 언러닝은 AI 모델에서 특정 학습 데이터의 영향을 제거하는 기술입니다. 다만 '얽힌 것을 푸는 일은 새로 배우기보다 어렵다'는 구조를 공유합니다.
Q. 언러닝은 배운 것을 잊어버리는 건가요?
망각과 다릅니다. 비요크의 연구에 따르면 저장 강도는 증가만 하기 때문에 삭제라는 개념 자체가 인지적으로 성립하기 어렵습니다. 그 지식이 자동으로 적용되는 회로를 멈추고 지금 상황에 맞는지 다시 검토하는 과정에 가깝습니다.
Q. 디지털 네이티브가 AI도 더 잘 쓰나요?
그렇게 볼 근거는 약합니다. 용어를 만든 프렌스키 본인이 2009년에 네이티브와 이민자의 구분이 덜 유의미해질 것이라며 판단력 중심의 '디지털 지혜'를 새 기준으로 제안했고, 교육학계도 이 개념이 연령 결정론적이라고 비판해왔습니다. 도구 사용의 능숙함과 그 결과를 판단하는 능력은 별개의 문제이기도 하고요.
Q. 언러닝은 검증된 개념인가요?
학계에서 논쟁 중입니다. 조직학습과 성인교육 분야에서 오래 쓰여온 개념이지만, 하월스와 숄데러(2016)처럼 '언러닝이라는 독립된 과정'의 실증 근거가 부족하다고 보는 비판도 있습니다. 다만 삭제가 아니라 밀어두기라는 점에서는 양쪽이 일치합니다.
Q. 회사에서 AI 교육을 하는데 왜 경력자들에게 잘 안 먹힐까요?
전문성 역전 효과 때문일 수 있습니다. 초보의 인지부하를 줄여주는 상세한 안내가 사전 지식이 많은 학습자에게는 불필요해지거나 오히려 방해가 됩니다. 숙련도별로 다른 설계가 필요한 영역입니다.
Q. 경험이 많으면 언러닝에 불리한가요?
경험은 되감을 대상을 늘리는 동시에 새 학습의 발판도 늘립니다. 체스 연구가 보여준 것처럼 사고의 경직성은 전문가에게도 나타나지만, 전문성이 높을수록 그 효과에는 덜 취약했습니다. 문제는 경험 자체가 아니라 경험이 '자동으로' 적용될 때라서, 자동 적용을 알아차리는 것이 개입 지점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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