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 최첨단에 선 사람들이 왜 '답을 못 정하는 힘'에 주목하는가?
'Conundrum'이라는 단어 들어보셨나요? 저는 이번에 처음 들어봤는데요. 1590년대 옥스퍼드 대학 은어에서 튀어나왔다는 썰이 있습니다. 첫 기록은 1596년 토머스 내시의 글에서 '잘난 척하는 현학자'를 비꼬는 욕이었다고도 하고요. 어원은 지금도 불명인 것 같은데, 라틴어를 흉내 낸 가짜 라틴어 농담이었을 거라 추정됩니다. '변덕' → '말장난'을 거쳐 17세기 말에 지금의 뜻, '답이 쉽게 안 나오는 난제'가 됐죠.
일론 머스크가 자기 자식을 보내기 위해 만들었다고 하는 Ad Astra, 지금의 Astra Nova의 교육 방침이 이 'Conundrum(코넌드럼)'이라고 하는데요. 답이 쉽게 나오지 않는 문제를 아이한테 던지는 것이 이 교육 방침의 핵심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Conundrum은 '정답이 없는' 윤리적 딜레마를 1분짜리 영상으로 던져, 아이가 스스로 판단을 내리고 그 근거를 말하도록 훈련시키는 도구입니다. 그리고 이걸 지지하는 사람들의 논리는 의외로 단순합니다 — 답이 있는 문제는 이제 기계가 더 잘 푼다.
Conundrum이 대체 정확히 뭔가요?
Conundrum은 온라인 학교 Astra Nova가 자기 학생들과 함께 만든 윤리적 딜레마 질문이자 영상 시리즈입니다. 지금은 YouTube에 누구나 볼 수 있게 공개가 되어 있어요. 이 영상 작업을 위해서 애니메이션은 Artrake, 배포는 세계 최대 교육 플랫폼이라 불리는 ClassDojo가 맡았습니다. ClassDojo의 CEO 샘이 SpaceX 캠퍼스에 있던 이 학교를 방문한 게 계기가 되어 이렇게 큰 프로젝트가 되었는데요. 지금까지 수백만 명이 참여했고, 거의 모든 나라의 교실에서 쓰였습니다. 2026년 5월 기준 약 60여개가 공개돼 있어요.
이건 논리 퍼즐이 아니라 윤리적 딜레마입니다. 정답으로 수렴하는 수학 문제가 아니라, 좋은 선택지 여러 개 사이에서 갈등하게 만드는 게 핵심입니다.
좋은 '답이 없는 문제'를 위한 3가지 재료
학교가 공개한 "좋은 Conundrum의 3가지 재료"를 보면 설계 의도가 분명해집니다. 첫째, '정답'이 없을 것. 둘째, 고민할 만한 좋은 선택지가 보통 3~5개 있을 것. 셋째, 갈등이 흥미로울 것.
학교가 덧붙인 조언은 더 날카로워요. 제작 완성도보다 질문 그 자체가 중요하고, 가장 잘 만든 Conundrum은 (a) 즉각 흥미를 끌면서 (b) 선택지 사이에서 청중을 대략 반반으로 갈라놓는다는 겁니다. 심지어 대놓고 금지한 것도 있어요 — "트롤리 딜레마는 재현하지 말 것." 너무 뻔하고 이분법적이라는 거죠. 진짜 좋은 딜레마는 선택지 서넛이 다 그럴듯해서 괴로운 겁니다.
예시 하나만 제대로 보죠 — The NASA Conundrum
말로만 하면 감이 안 오니, 대표적인 Conundrum 문제를 하나 살펴보겠습니다.
설정은 이렇습니다. 한 우주국에 프로그램이 7개 있는데, 예산은 그중 딱 3개만 지원할 수 있습니다. 어느 것을 살리고 어느 것을 포기할 것인가?
여기엔 정답이 없어요. 당장 성과가 나오는 프로그램을 살릴 것인가, 먼 미래를 보고 투자할 것인가, 인류 전체에 이로운 쪽인가, 지금 우리나라에 급한 쪽인가 — 기준을 뭘로 잡느냐에 따라 답이 통째로 달라집니다. 아이는 7개 중 3개를 고르는 게 아니라, "나는 이 기준으로 골랐다"를 설명하고 방어해야 하는 거예요. 이게 11살에게 던지는 문제입니다.
실제 다른 Conundrum도 결이 비슷해요. 구름에 화학물질을 뿌려 비를 내리게 하는 기술을 개발한 기업이 그걸 팔아도 되는가(The Weather Conundrum), 한 가족 땅의 마지막 나무 한 그루를 모두가 원할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The Tree Conundrum) — 어른들도 회의실에서 싸울 만한 문제입니다.
근데 이게 왜 하필 'AI 시대'에 중요한가요?
정답이 있는 문제의 값어치가 빠르게 떨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답이 명확한 문제 — 계산, 요약, 번역, 정형화된 코드 작성 — 이런 건 이제 AI가 몇 초 만에 처리합니다. 그럼 인간에게 남는 값어치는 어디로 가느냐. 답이 정해지지 않은 곳, 무엇이 옳은지 사람들이 서로 다투는 곳으로 갑니다. "이 기술을 팔아도 되는가?" 같은 질문에는 API가 없거든요.
이건 정서적 호소가 아니라 노동시장 데이터가 뒷받침합니다. 세계경제포럼(WEF)의 「일자리의 미래 2025」 보고서는 55개 경제권 1,000개 이상 고용주를 조사했는데, 분석적 사고가 고용주가 꼽은 최상위 핵심 역량으로 10곳 중 7곳이 필수로 여겼고, 창의적 사고가 4위에 올랐습니다. 그리고 AI·빅데이터가 가장 빠르게 중요해지는 기술로 꼽히는 바로 그 옆에, 창의적 사고와 호기심·평생학습 같은 인간 고유의 역량이 나란히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어요. 기술이 발전할수록 기계가 대신 못 하는 판단력의 값이 오른다는 신호입니다.
이런 문제는 아이에게 모호함 속에서 버티는 훈련을 시킵니다. 답이 안 보이는 상태를 견디고, 근거를 세우고, 반대 입장을 듣고, 그러고도 결정을 내리는 것. AI가 답을 쏟아내는 세상에서 정작 희소해지는 건 "그래서 우리가 뭘 해야 하는가"를 판단하고 불확실성을 단단히 버텨내는 능력이라는 겁니다.
LLMs are not deterministic Machines
우리의 모든 장면에서 LLM Application을 굴리는 이 지점에서 한 가지 더 짚고 싶은 게 있습니다. 우리는 보통 "AI는 정답을 준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AI가 내놓는 답 그 자체도 하나로 확정된 정답이 아닐 수 있습니다. ChatGPT 같은 모델은 '정답을 아는' 게 아니라, 다음에 올 단어를 확률로 골라 이어붙이는 방식으로 작동하지요. 많이들 느끼셨겠지만, 프롬프트를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답의 퀄리티가 달라지는가 하면, 같은 질문을 두 번 넣으면 답이 조금씩 달라질 때도 있습니다. — 애초에 결정론적인(하나로 딱 떨어지는) 답이 아니라, 확률적인 답이라서요. 그러니 "AI가 답을 다 준다"는 세상은 정확히는 "그럴듯한 답이 여러 개 쏟아지는" 세상에 더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또 빠르게 변하는 세상 속에서 '오늘은 답이더라도, 내일은 답이 아닌 일'들이 너무 수두룩 빽빽하고요. 영국 시인 존 키츠는 200여 년 전 이걸 negative capability(소극적 수용력) — 성급하게 사실과 이유로 달려가지 않고 불확실성과 의문 속에 머무는 능력 — 이라고 불렀는데, 이 오래된 개념이 하필 지금 AI 시대에 다시 소환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답이 흔해질수록, 빨리 확정 짓는 것을 우선하기보다도 내가 선택한 답을 지지할 수 있는 단단함을 갖추는 게 필요하겠다고요.
최첨단에 선 사람들은 왜 자녀에게 이걸 시켰나
로켓과 전기차로 세상을 뒤집으려던 사람이, 자기 자식 교육에서 가장 먼저 없앤 게 '정답 맞히기'였다는 것. 그리고 그 자리를 채운 게 Conundrum 같은 '정답 없는 문제'였다는 것은 울림이 있습니다.
2014년, 일론 머스크는 자녀 다섯을 다니던 명문 사립학교에서 빼냈습니다. "그들이 내가 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들을 하고 있지 않았다"는 이유로요. 그리고 SpaceX 호손 캠퍼스 안에 Ad Astra라는 학교를 세우고, 주로 자기 자녀와 SpaceX 직원 자녀 40~50명을 가르쳤습니다. 성적도, 외국어 수업도, 음악 수업도 없앴고요. 설립자에게 준 유일한 지시는 "make it great(멋지게 만들어라)"였다고 합니다.
당시 이 학교가 어떻게 불렸는지 보면 그 성격이 드러납니다. 매체들의 한 줄 정의가 당시 이 학교에 대한 평을 알려줍니다. 워싱턴포스트는 이 학교를 한때 "세계에서 가장 배타적인 학교일지도 모른다"고 표현했고, "화염방사기를 좋아하는 영재들을 위한 비밀 실험실 학교"라고도 했습니다. Ars Technica는 "테슬라가 운송을, SpaceX가 로켓 산업을 뒤흔든 것처럼 교육을 혁신하려는 학교"로 요약했습니다.
2026년 지금은 머스크 자녀들은 모두 이 학교를 떠났고, 학교 지식재산권의 절반은 머스크가 여전히 가지고 있지만, 더 이상 SpaceX 직원 자녀들만을 위한 학교도 아니고, 일론 머스크가 운영에 관여하지도 않는다고 하네요.
머스크 세계관의 주입 아닐까?
일론은 대단한 사람이긴 한 것 같지만, 내 자식이 일론처럼 되는 건… 싫을 수도 있습니다. (아마도요). 미국 US News의 한 오피니언은 이 문제들의 프레임 자체가 일종의 "인지적 조건화"로 작동해 학생들을 은근히 머스크식 세계관 쪽으로 밀어붙인다고 비판한 바 있습니다. "기술이 해결책이다" "효율이 우선" 같은 전제가 문제 설정에 이미 깔려 있다는 지적입니다. 실제로 실리콘밸리의 부자들은 기술이 빈곤, 기아, 불평등과 같은 문제들의 해결책이라고 '심플하게' 믿는 경향들이 두드러지긴 하고, 사회 정치적인 복잡성을 다소 가볍게 여기는 경향도 존재하긴 합니다.
실제로 이 문제들을 활용하는 방법
학교(Astra Nova)는 100% 온라인입니다. 오프라인 캠퍼스가 없고, 모든 수업이 영어 라이브(Zoom)로 6~16명 규모로 진행돼요. (연 몇 차례 선택적 오프라인 모임만 있습니다.) 하지만 정식적인 입학 절차가 있기 때문에 학교가 누구에게나 오픈된 건 아닙니다.
하지만 Conundrum이라는 도구 자체는 어디서든 씁니다. 그냥 유튜브 영상이니까요. 온라인 수업에서도 틀고, 대면 교실에서도 틀고, 거실 TV에서도 틀 수 있어요. 실제로 ClassDojo를 통해 전 세계의 실제(대면) 교실로 이미 퍼졌습니다.
진행의 핵심은 어른이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라 '진행자'가 된다는 겁니다. 교사는 강의자보다 멘토·진행자에 가깝게 행동해요. 생각을 자극하는 질문을 던지고 대화를 이끌 뿐, 정답을 내려주지 않습니다. 이 계열 수업(Synthesis)에서 한 교사는 첫 수업을 "여기는 일반 학교랑 달라. 성적도 없고, 나이로 나누지도 않아"라는 말로 연다고 해요. 이 한마디에 '정답을 맞혀야 한다'며 굳어 있던 아이들이 곧바로 긴장을 푼다고 하네요.
실제 흐름을 단계로 정리하면 대략 이렇습니다. 첫째, 1분짜리 Conundrum을 함께 본다. 둘째, 각자 어느 편에 설지 정한다(팀이 나뉜다). 셋째, 왜 그 입장인지 이유를 세운다. 넷째, 반대편 입장을 끝까지 듣는다. 다섯째, 서로 근거로 부딪친다. 여섯째, 마지막에 "내 생각이 바뀐 지점이 있나?"를 돌아본다.
가장 중요한 일은 정답을 알려주고 싶은 충동을 참는 것입니다. 아이가 답하면 "정답은 이거야"가 아니라 "오, 그렇게 생각했구나. 근데 반대편 입장이라면 뭐라고 할까?"로 받아치는 거죠. 솔직히 말해서, 이게 우리나라에서 가능할까? 싶긴 하고요. 저조차도, 수업이 이렇게 마무리된다면, 엥 이게 끝인가? 싶은 생각이 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우리에게 '결론 내리기'라는 것이 이렇게나 익숙하고 극복하기 어려운 것인가 봅니다. 그리고, 이런 진행이 가능한 어른이.. 분명히 있겠죠?
집에서 오늘 당장 해볼 수 있나요?
ClassDojo의 Conundrums 페이지나 Astra Nova 유튜브 채널에서 영상을 골라서 해볼 수 있는데요. 대상 연령이 넓어서 6세 이상이면(어린아이는 약간의 도움과 함께) 충분히 가능하고, 십대·성인도 됩니다. 저녁 먹으면서 틀어주고, 딱 두 마디만 하시면 돼요.
"너라면 어떻게 할 것 같아? 왜?"
그리고 앞서 말한 그 어려운 부분을 지켜봅니다 — 평가하지 않기. 정답을 정해주지 않기. 반대편을 상상하게 하기!
Q. Conundrum은 몇 살부터 할 수 있나요?
관련 커리큘럼 기준 6세 이상이면 가능하고(어린아이는 어른의 도움 필요), 십대와 성인까지 폭넓게 활용합니다. 아이용으로 만들어졌지만 어른에게도 통한다는 반응이 많습니다. 참고로 Astra Nova 학교 자체의 입학 연령은 현재 11~18세입니다.
Q. Conundrum과 그냥 토론 수업은 뭐가 다른가요?
일반 토론은 종종 '이기는 것'이 목표가 됩니다. Conundrum은 정답도 승패도 없고, 목표가 '더 나은 판단에 도달하는 것'이에요. 학교가 정한 조건 자체가 "선택지를 반반으로 갈라놓을 것"이라, 애초에 한쪽이 압도하기 어렵게 설계돼 있습니다. 이걸 토론 수업으로 유도하고 결론을 낸다면, 완전 잘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Q. 정답을 안 알려주면 아이가 헷갈려하지 않나요?
그 '헷갈림(불확실성)'이 사실 핵심 재료입니다. Johnson 형제의 연구에서 학습을 끌어올리는 출발점이 바로 아이디어 간 충돌에서 오는 불확실성이었어요. 방치가 아니라 훈련입니다. 진행자가 근거를 세우도록 계속 질문을 던져주니까요.
Q. Astra Nova의 교육과정은 지금 어떻게 운영되나요?
고정 커리큘럼 없이 매 학기(연 3회) 수업을 새로 설계하며, 지식 암기보다 학습을 대하는 태도·팀워크·윤리적 판단을 기르는 데 초점을 둡니다. (다만 수학은 Algebra·기하·미적분 등 정식으로 가르칩니다.)
Q. 그럼 Conundrum은 지금 어떤 역할을 하나요?
두 가지입니다 — 밖으로는 ClassDojo·유튜브를 통해 전 세계 교실에 무료로 공유되는 교육 자료이고, 안으로는 Astra Nova 입학 전형의 첫 관문으로, 지원자가 Conundrum 하나를 골라 30초~2분 영상으로 자기 생각을 추론해 답하는 방식으로 쓰입니다.
Q. 몇 개나 있고 어디서 보나요?
2026년 5월 기준 약 60개입니다. ClassDojo Conundrums 페이지와 Astra Nova 공식 유튜브 채널에서 무료로 볼 수 있고, 대본도 각 영상 설명란에 공개돼 있습니다.
